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1. 소개
우라와 서포터즈
J리그에 속한 프로축구구단. 흔히 우라와 레즈라고 불린다.
사이타마 현 사이타마 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다. 같은 지역이던 사이타마 현을 연고로 하는 오미야 아르디자와는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어, 두 팀의 경기를 일본에서는 사이타마 더비라 부르고 있다. FC 서울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
2016년까지는 미쓰비시 자동차 산하 자회사였으나, 2016년 9월에 미쓰비시 자동차가 닛산자동차 산하에 들어가면서 닛산 계열의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소유권 중복이 발생하였다. J리그에서는 이것이 금지되기 때문에[2] 미쓰비시 중공업이 과반수 지분을 갖는 지주회사 다이아몬드 FC 파트너즈를 설립하여 (클럽 지분의 50.75% 소유) 대주주 지위가 이전되었다. 원칙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실업팀 당시 모기업으로 돌아간 셈.
유니폼의 엠블럼 위에 위치한 우승을 상징하는 별이 3개 있는데 큰 별 2개는 ACL 우승, 가운데 작은 별 1개는 J1리그 우승을 나타낸다.
일본에서 서포터즈가 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축구 클럽으로 유명하다. 평균 관중과 입장 수입 양쪽에서 2006 시즌 이래 독보적인 J리그 최고를 찍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간 예산도 가장 많다. 가령 2015 시즌 입장수입이 21.7억엔으로, 그 뒤를 달리는 FC 도쿄,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2배 이상 앞지르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도쿄의 축구팬들이 근교인 사이타마에 있는 우라와를 많이 응원하기 때문으로 보인다.[3] 반대로 2019 시즌에는 FC 도쿄의 입장객이 우라와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했는데, 2010년대에 FC 도쿄가 성적이 좋아지면서 도쿄 지역의 우라와 팬이 FC 도쿄로 갈아탄 것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2. 초창기
1950년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로 창단되었다. 현재 팀명인 레드 다이아몬즈는 원래 미쓰비시 그룹의 로고인 쓰리 다이아몬드에 빨강을 입힌 것이다.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는 JSL과 천황배에서 4회 우승을 거두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어 왔는데, J리그 참가 당시 사이타마 시(당시 우라와 시)를 연고로 삼아 리그 원년 가맹팀으로 재출범하였다.
본래 미쓰비시 중공업에게서 팀을 인수한 미쓰비시 자동차는 미쓰비시 본사가 있고 실업 축구단 시절 근거지였던 도쿄를 연고지로 하기를 희망했지만,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던 에도가와구 육상경기장이 규정 미달로 인해 인근 지역인 우라와 시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도쿄 인근의 다른 경기장이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4] 그나마 J리그와 사이타마현이 초기에 유치 작업을 벌였던 것은 지역내 사업장이 있고 지금은 JFL의 강호로 군림하는 혼다 FC였으나, 혼다가 프로 진출을 포기했기 때문에 미쓰비시가 우라와를 잡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미쓰비시도 우라와에 가지 않았다면 다음 순위는 쇼난 벨마레의 전신인 후지타였다.
3. J리그
3.1. 암흑기
초창기 감바 오사카와 같이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였다. 1993년 10개 팀중 10위 1994년 12개 팀중 12위 2년연속 꼴찌를 기록해 J리그 팬들로부터 "J리그 짐"이라고 조롱을 당하게 된다.
그러다가 1995년 4위로 수직상승하고 1996년에도 5위를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성적을 보여주지만 1997년 10위로 떨어지고 1998년 6위를 기록하나 1999년 골득실 1점차로 아비스파 후쿠오카에게 밀려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못해도 평균 관중 2만명 찍던 우라와지만 팬들에 인내심이 다했는지 J2에 있을때는 평균관중 16000명 선까지 내려가게 된다.[5] 이듬해인 2000년도에는 시즌 최종전까지 오이타 트리니타와 2위 경합전을 벌인 끝에 J1리그에 겨우 복귀했다.
승격되었지만 2001년 10위, 2002년 11위, 2003년 6위+리그컵 우승을 하게 되면서 그런저런 중하위권팀 시즌을 보내게 된다.
3.2. 전성기
2004년 팀이 확바뀌기 시작하면서 이때 부터 전성기가 시작된다. 중위권팀 맞나 싶을정도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고 전기리그3위 후기리그 우승, 컵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챔피언 결정전을 치루게 된다. 이때 평균관중이 28,000명에서 36,000명으로 오르게 된다.
원정 1:0패 홈 1:0 승리 원정 다득점 없이 1:1동률을 기록한 가운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었지만 승부가 나지않아 승부차기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홈팬들에 성원에도 불구하고 1번, 4번 키커가 실축하고 4번 성공한 요코하마에게 우승을 넘겨주게 된다.
2005년 감바 오사카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천황배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팬들은 "우리는 언제 리그 우승하냐?"라는 반응이였다.
2006년 아베 유키, 하세베 마코토, 스즈키 게이타, 오노 신지, 툴리오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미드필더, 수비진을 앞세워 리그 승점 72점으로 팀 창단 첫 J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천황배도 2년 연속 우승하면서 더블을 달성하게 된다. 리그 우승당시 2위~5위 팀보다 득점이 적은데도 실점은 28점 밖에 안해 리그최소 실점을 기록 짠물수비로 우승을 차지할수 있었던거다.
2007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게 되지만 가시마 앤틀러스에게 J리그 우승을 넘겨주게 된다. 이때도 실점 28점으로 리그 최소 실점 기록 짠물 수비를 보여주었지만 승점 2점 차이로 가시마 앤틀러스에게 우승을 넘겨주게 된다.
3.3. 다시 찾아온 침체기
2004년~2007년 전성기를 보냈으나 2008년 부터 팀이 다시 침체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주축 선수들이 하나둘씩 이적하게 되고 팀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8년 팀에 주축인 오노 신지, 하세베 마코토가 독일로 날아가서 미드필더진에 구멍이 생기고 말아 리그 7위로 떨어지고 AFC 대회에서도 4강에서 감바 오사카에게 4:2로 완패해 AFC 2연속 우승은 물건너 가게 되었다. 2009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않아 리그 6위를 기록하면서 중위권으로 추락하게 된다.
2010년에는 수비수인 아베 유키가 잉글랜드 2부리그 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했고 툴리오 마저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여파로 그나마 남아있는 수비, 미들이 붕괴되 리그 10위를 기록했고 2011년에는 반포레 고후와 승점이 같았으나 골득실에서 월등히 앞서 15위를 기록해 간신히 잔류하였다.
3.4. 새로운 도약기
전성기 이후 4년간 슬럼프를 겪다가 2012 시즌 승승장구 하더니 리그막판 극적인 3위를 차지해 4년만에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게 되었다. 2013시즌은 산프레체 히로시마,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치열한 우승다툼을 했지만 막판에 3연패를 하게되어 추락, 시즌 6위로 마감했다. 2014시즌도 가시마 앤틀러스, 감바 오사카와 치열한 우승다툼을 했지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15시즌 새로운 리그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전기리그에서 무패로 1위를 달성하며 포스트시즌 챔피언십과 AFC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후반기에 조금 부진해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에게 후기리그 우승과 통합 1위자리를 빼앗기게된다. 새롭게 도입된 포스트시즌으로 인해서 우승의 가능성이 남아있었지만 결국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감바 오사카에 패배하며 시즌 마감.
2016시즌에는 후기리그에서 우승하고 통합 승점도 1위를 차지했다. 원래는 리그 최다 승점팀이므로 우승했어야 했지만 2015시즌부터 도입된 포스트시즌으로 인해서 최악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통합승점 1위로 챔피언십 결승에 직행했다. 상대는 전기리그는 우승했지만 후기리그에서 극도의 부진에 빠져 11위로 마친 가시마 앤틀러스.(그래도 최종 승점은 3위)결승 1차전 가시마 원정에서 0-1로 승리했지만 홈에서 1-2로 패하며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서 가시마에게 리그우승을 내주게 된다. 결국 이 영향으로 포스트시즌 챔피언십은 2016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2017시즌에는 초반에 대량득점으로 승리하는 경기가 많고 잘 나갔지만 중간에 부진하며 페트로비치 감독이 사임했다. 결국 7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도 2018시즌엔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2018시즌 리그 개막후 5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자 전시즌 챔피언스리그를 우승시켰던 호리 타카후미 감독을 경질시킨다. 경질시키고 곧바로 리그에서 1승을 기록했다. 임시감독 체제로 단 1승도 없던 팀이 리그 3연승을 거두면서 감독경질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줬다. 2018년 4월 20일 올리베이라 감독이 정식으로 부임했다. 이후 리그는 5위로 마쳤지만 천황배에서 우승하면서 챔피언스리그로 복귀했다.
2019시즌은 예상보다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5월에는 4연패를 기록하면서 올리베이라 감독이 경질됐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한데 반해서 국내에서는 끝없는 부진이 이어지고있다. 리그에서도 하위권에 쳐져있을뿐 아니라 천황배에서는 세미프로 혼다 FC에게 패하면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물건너갔고 강등권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다음 리그 상대는 창단 첫 우승을 노리는 FC 도쿄. 그나마 다행이라면 쇼난과 마쓰모토의 2연승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도쿄와 무승부를 거뒀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점 1점 아래인 시미즈와 토스의 맞대결이 있기 때문에 최종전에서 감바에 패하더라도 강등의 가능성은 낮다. 시미즈와 토스가 비기더라도 두 팀과의 골득실차는 크기 때문. 최종전에서 감바 오사카에게 2-3으로 패하며 14위로 시즌을 마쳤다.
4. AFC 챔피언스리그
- 2007
조별리그에서 무승부를 많이 기록하면서 강팀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승점셔틀 페르식 케디리와 원정경기에서도 3:3 무승부를 거두는 모습을 보이면서 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2승 4무를 기록 조1위 8강에 올라가게 되었다.
8강 상대는 전년도 우승팀 전북 현대 모터스로 확정되었는데 이떄서 부터 우라와에 전설이 시작된다. 1차전 홈에서 2:1승리를 거두고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두면서 K리그팬들을 2번 놀라게 만드는데 하나는 전북 상대로 1, 2차전 합계 4:1대승을 거두었다는것과 2차전 전북 홈인데도 '''원정팬'''들이 많다는 거였다.
4강 상대는 2006년 K리그에서 승승장구하는 성남 일화 천마로 확정되었다.
전북과 달리 성남을 상대로 상당히 고전했는데 1, 2차전 모두 서로가 엎치락뒤치락 했지만 2:2 무승부를 거둬 합계 4:4를 기록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야 했다.
승부차기 1차 시도는 양팀 모두 성공. 하지만 2차 시도에서 최성국이 실축하면서 승부가 갈리고 만다. 4차까지 모두 성공했고 마지막 5차 시도 우라와 키커가 성공하면서 남은 키커와 상관없이 우라와가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결승 상대는 세파한 FC로 확정 되었다.
결승 원정 1차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2차전 홈에서는 5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2:1 승리를 거둬 팀창단 첫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 2008
4강 상대는 "일본의 퍼거슨" 니시노 감독이 이끄는 감바 오사카를 상대하게 되었다.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그럭저럭 괜찮은 출발을 보였고 팬들도 "어차피 홈에서는 이기겠지?"라는 생각으로 홈 2차전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2차전 5만 명의 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감바가 매서운 공세를 퍼부어 '''3:1로 승리'''해 결승에 진출했고 '''우라와 홈팬들을 패닉상태로 빠트렸다.'''
이후 감바 오사카는 우라와를 4:2로 꺾고 나중에 펼쳐진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 2차전 합계 5:0 대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한동안 AFC 대회와 인연이 없다가 2012년 리그 막판 3위를 기록해 AFC 티켓을 확보해 4년만에 AFC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 2013
- 2015
- 2016
- 2017
8강에서 같은 J리그 팀인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꺾고 4강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4강에서 만난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1차전에서 1:1 무승부, 2차전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둬 10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전에서는 알 힐랄에게 1차전 1:1 무승부, 2차전 1:0 승리로 2007년 우승 이후 10년 만에 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리그에서 부진하며 2018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
- 2019
부리람을 상대로는 가볍게 승리했지만 베이징 궈안에게는 0 슈팅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면서 개처럼 경기 내내 두들겨맞는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베이징 궈안도 만만치 않게 못해서 결과는 기적적인 무승부. 전북 현대에게는 가볍게 2패를 당했다. 마지막 베이징 궈안과의 홈에서의 멸망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기면 우라와가 16강에 진출하며, 0-0 무승부면 역시 진출, 1-1 이상의 무승부면 탈락하는 상황. 베이징 궈안과의 멸망전에서 3-0 대승을 거두고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울산과의 16강 1차전 홈경기에서 2-1로 역전패를 당하며 전망이 어두워진 상황. 그런데 2차전 원정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여 울산은 무참하게 패배하고 만다. 심지어 당시 우라와는 J리그 10위였고, 울산은 3위(경기수 모자라서 3위라 실질적 1위)였기 때문에 울산에게는 매우 뼈아픈 패배였다. 이로써 K리그팀은 모조리 8강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상하이와의 8강 1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에만 2골을 먼저 넣으며 승리 하는듯하였으나 후반전에 헐크에게 2골을 허용하며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나마 2차전 홈경기에서 득점없이 비겨도 원정득점원칙으로 준결승에 진출할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오른상태
상하이 와의 8강 2차전 홈경기에서 예상대로 상하이를 압도하고 전반전에 선제골도 기록했으나 결정력 부족으로 기어이 후반전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4강으로 진출한다.
광저우와의 4강전 홈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우위를 점했고 원정에서마저 0-1로 승리하면서 결승 진출에 성공하였고 알 힐랄과 맞붙게 되었다. J리그의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그러나 상대 팀인 알 힐랄 FC에게 원정 0-1패, 홈 0-2패로 탈락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동아시아 팀이 서아시아 팀에게 결승에서 패한건 2011년 전북 현대 모터스 이후 8년만에 벌어진 일.
5. 유니폼
푸마를 거쳐 현재는 나이키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맨유가 나이키 유니폼을 입던 시절 보다폰 스폰서와 유니폼 색깔이 겹치면서 맨유 짝퉁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사실 서로 디자인을 어느 정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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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우라와 나이키 유니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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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시즌 나이키 홈 유니폼.
분데스리가의 RB 라이프치히의 유니폼과 디자인을 공유한다.
홈 유니폼은 알 힐랄의 유니폼과 디자인을 공유한다.
6. 선수 명단
7. 사이타마 더비
사이타마현은 시즈오카현과 더불어 야구보다 축구의 인기가 더 높은 지역이다.
한국에서는 팀이름이 익숙한 감바와 세레소의 오사카 더비가 잘 알려져 있지만 현지에서 오미야 아르디자와 우라와 레즈의 사이타마 더비는 J리그를 대표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치열하고 열성적인 더비 매치로 통한다.
2001년 이전에 사이타마현의 대표도시는 현청소재지였던 우라와시와 도쿄의 번화가인 이케부쿠로와의 교통이 편리해서 번화했던 오미야시였다. 지금은 사이타마 시로 합쳐져서[8] 하나의 도시가 되었지만 둘의 라이벌 의식은 여전했고 축구에서의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졌다. 다만 현실적으로 1부리그 중상위에 포진하는 우라와와 달랑 15,000석짜리 경기장 갖고 1~2부를 오가는 오미야의 위치 차이가 크다 보니 관동 지역에서 팬덤이 큰 요코하마 F. 마리노스나 가시마 앤틀러스와도 비교적 라이벌 의식이 있는 편이다. 상대팀이 우라와보다 우선시하는 라이벌리가 존재하는 게 문제.[9]
팀의 규모나 역사, 위상, 인기, 홈구장 등으로는 우라와가 압도적으로 우위이지만 리그에서의 상대전적은 의외로 우라와 기준 12승 7무 9패로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리그컵과 천황배에서는 9번 만나서 9번 모두 우라와가 승리했다.
두 팀의 성향도 다른 편인데 오미야는 장외룡 감독을 선임하기도 했었고 김영권, 박원재, 이천수, 조원희 등의 한국 선수가 많이 뛰기도 했으며 조영철은 팀내 최고 인기선수 대접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구단이나 팬 모두 한국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우라와는 한국선수 영입은 커녕[10] 일본 국가대표로까지 뛰었던 재일교포 선수 리 타다나리에게 야유까지 하는 등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8. '''막장 오브 막장의 끝을 달리는''' '''서포터즈'''
못 나가도 평균관중이 3만명을 유지할 정도고 원정석을 제외하고 모든 좌석이 서포터즈일 정도로 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J리그에서 최고 인기팀이다. 한창 잘나갈 때에는 47,000을 찍었던 기록이 있다. K리그에서 프렌테 트리콜로나 수호신 정도의 위치이지만, 이 둘보다 사고를 더 많이 치고 이 때문에 J리그 팬덤 내에서는 그냥 머릿수만 많은 돌아이들 취급이다.[11] 우라와가 사고를 쳐서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들으면 다른 팀 서포터즈들은 '''"저 새끼들이 사고친 건데 왜 가만히 있는 우리까지 욕을 먹냐?"'''라면서 반발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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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욱일기는 덤이다. K리그 팀과는 물론 심지어 한국 선수가 뛰고 있는 팀과 경기할 때마다 고정으로 출연한다. 그 외 J리그 팀들과 할 때도 빠짐없이 나오긴 하지만, 우라와 팬덤 특유의 극우 성향 때문인지 더 돋보이는 편이다.
그것도 모자라 2014년 3월에는 일부 서포터가 골대 뒤쪽 관중석 출입구에 'Japanese Only'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아서 인종차별 문제로 구설수를 일으켰다. 해당 현수막을 건 서포터 당사자는 "골대 뒤쪽은 가장 열렬한 팬들이 모이는 성지 같은 곳인데, 요즘 응원통제가 되지 않는 외국인 팬들이 드나들길래 현수막을 걸게 되었다."라고 진술했다. 우라와 선수 마키노 토모아키는 이를 팀 동료 리 타다나리에 대한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여 이 사진을 트윗하며 우라와 서포터를 깠고, 이는 J리그 팬들이 대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라와 레즈는 징계를 받아 벌금 500만 엔 부과와 2014년 3월 23일 시미즈 S펄스전에서 무관중 경기를 치르게 됐고, 이후 현수막을 거는 행위 자체도 금지되었다. 또한 구단 자체 징계를 통해 임원진 보수의 20%를 3개월동안 자진 반납하는 징계를 내렸다. 그리고 구단 내부 회의를 통해서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 그룹 11개가 해산되었다. 이 중에는 우라와 레즈 최대의 서포터 그룹이자 J리그 최대의 서포터 그룹인 URAWA BOYS도 포함되어있다.
해외 선수 교류가 활발한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서포터즈에서 "Japanese Only" 사건을 가열차게 디스했고[12][13] 일본의 유명인사들도 이 사건에 대해서 디스를 했는데, 도쿄도 마스조에 요이치 당시 지사가 "이런 일을 벌이면 일본이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부끄러울 뿐이다."라고 디스를 했고, 일본 여자축구대표팀의 주장 사와 호마레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인종, 성별로 차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일본 만담가도 시상식에서 시상소감으로 우라와 레드의 인종차별 행동을 디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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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의 수원 팬들은 '''"FOOTBALL FANS ONLY"'''란 현수막을 걸면서 디스했다.#
이번 사건이 이충성의 영입이 원인인 것이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으나,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불명이다. 다만, 당일 이충성이 교체로 투입될 때 일부 서포터들이 야유를 했다는 소리가 있고, 구단 자체적으로 한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 영입 원칙[14] 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15] 사실, 우라와 레즈 서포터들은 2007년 AFC 챔피언스 리그 전북 현대와의 경기와 전북 현대 서포터의 '일본 대지진을 축하합니다' 현수막 사건 이후로 한국에 대한 시선이 상당히 험악한 편이다.#
수원과의 경기를 앞두고는 수원의 전지훈련 장소에 몰카를 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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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2015년은 이상하게 조용하더니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패트릭 "우라와 팬 인종차별, 잔인하다"
2017년에는 다름아닌 국회의원과 충돌한 적도 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정치인과 맞장을 뜨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할 행동이다. 과격한 우라와 서포터스, 이번엔 정치인과 정면 충돌
2014시즌 우라와 레즈 인종 차별 사건으로 인해 해체되었던 URAWA BOY 는 2018시즌에 다시 결합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일본 위키피디아에 적혀져있다 번역 후 서포터 목록의 내용 중 맨 밑에서 4번째 줄을 보면, また、「URAWA BOYS」は2018年より活動を再開している。 (또한, URAWA BOY 는 2018시즌부터 활동을 재개하였다) 라고 적혀져 있다.
9. 관련 작품
- 로스타임: AFC 챔피언스리그 2010에 출전해 구태양이 속해있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FC 다롄, 시드니 FC 상대로 2승 1무 3패를 기록, 조3위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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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팀들의 대부분 킷 스폰서 계약은 나이키 재팬, 아디다스 재팬, 푸마 재팬처럼 본사가 아닌 일본 지점에서 후원한다.[2] 과거 AFC가 클럽 라이선싱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는 K리그에서 규제되지 않았다. 포항 스틸러스의 소유주였던 포스코가 다시 전남 드래곤즈를 창단한 것이 그 예. 다만 포항과 전남은 포스코가 지분율 15% 이하의 소수주주이기 때문에 현재는 형식상 중복 소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미국의 메이저 리그 사커에서는 2015년까지 중복 소유가 존재했다.[3] 실제로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철도가 도쿄 방향으로만 연결되어 있어 의외로 도쿄나 우라와나 시간 차이가 그렇게 나지 않는다.[4] 도쿄에는 구 국립경기장과 이를 재건축한 도쿄 신국립 경기장, 2001년에 개장한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이외에는 지금도 도쿄에 관중석 15,000석과 조명탑을 갖춘 경기장이 없다. J리그 대체 경기장으로 사용되는 곳 중에서 고마자와 육상경기장은 2만 석이나 조명탑이 없고, 실업 시절 미쓰비시의 홈이었던 에도가와구 육상경기장은 조명탑은 갖춰져 있으나 관중석이 5천 석 뿐이라 J리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신규 클럽을 수용한 도도로키(가와사키시)와 고마바(우라와) 육상경기장 또한 1만 석의 경기장을 2만 석 이상으로 증축하는 조건으로 유치가 가능했다.[5] 무서운 것은 그래도 이 해 1부까지 합쳐서 최다 관중을 우라와가 가져갔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도 2부로 강등된 팀은 평균 관중이 반 가까이 줄어드는 게 통례이다.[6] 전년도 중국 슈퍼 리그, FA컵 우승팀.[7] 실제로 많이 닮긴 했다.[8] 조금은 덜 유명한 요노시까지 총 3개의 시가 합병되었다.이후 이와츠키시까지 합병.[9] 마리노스는 옆동네 상대이고 꾸준히 강한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가시마는 J리그 초기부터 우승을 다퉈온 주빌로 이와타나 마리노스에 대한 대항심이 훨씬 크다.[10] 영입했던 한국인은 조귀재가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재일교포에다 쇼난 벨마레 감독 시절 갑질 논란으로 한국인한테까지 금지어가 되었다.[11] 과장된 게 아니라 말 그대로다.[12] "Yokohama Against Racism"이란 걸개를 걸어놨다.[13] 결국 우라와에서 뛰던 리 타다나리는 후에 요코하마로 이적한다.[14] 재일교포 출신이던 조귀재(창단 멤버), 임용개(일본명 : 하야시 유스케) 선수를 제외하면, 한국인은 부천 SK에서 활약했던 곽경근 뿐이며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후쿠시마 유나이티드 FC로 옮겼다. 그리고 이충성도 2018년을 마지막으로 우라와를 떠나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했다.[15] 애초에 우라와의 모기업이 어딘지를 잘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된다.